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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로...

유권자에게도 정치적 제자도가 필요하다

(2007. 10. 15)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누구를 선출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좌우된다. 그렇기에 선거는 가장 중요한 정치 과정이다. 이에 많은 기독교 단체들은 매 선거 때마다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기독교공명선거대책위원회’, ‘기독교유권자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번 17대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도 기독교 단체들은 ‘2007. 공의로운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여 함께 운동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2007. 공의로운 선택’과 유권자 제자도

이번 ‘2007. 공의로운 선택’의 핵심 목표는 유권자의 손으로 대선후보평가지표를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초점은 ‘지표’에 있지 않고 ‘유권자’에 있다. 즉,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지표가 아니라 주권자인 유권자가 스스로 만드는 대선후보평가지표를 개발하는 것이다. 굳이 ‘유권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유권자’야말로 ‘정치적 제자도’의 핵심 주체이기 때문이다.  

민종기 목사는 지난 9월 기윤실과 청어람아카데미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치적 제자도는 말씀 중심의 제자도이며, 그 말씀은 공공의 영역에서 요청되는 정의의 말씀이다. 기독교 정치인은 은혜로운 정의의 규범이 국가의 모든 사람과 공동체 위에 흘러넘치게 하여 모든 신자와 불신자를 돕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독교 정치인은 반드시 ‘정치적 제자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또 한 번 장로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매우 의미있는 지적이다. 신명기 17장 16~20절에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이미 정치 지도자가 반드시 ‘정치적 제자도’를 갖추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제자도’는 정치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왕이 갖추어야 할 ‘정치적 제자도’를 설명하기에 앞서 신명기 17장 14~15절에서는 왕을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선택 기준, 즉 백성들의 ‘정치적 제자도’를 가르치고 있다. ‘정치적 제자도’는 유권자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호세아 8장에서는 오히려 유권자들이 갖추어야 할 정치적 제자도가 정치인의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선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들이 왕을 세워도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를 세우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치적 제자도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에 포함되며, 정치적 제자도에 어긋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우상 숭배라고 보는 것은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호세아서는 유권자가 ‘정치적 제자도’를 갖추지 못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정치 지도자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제자도’를 갖춘 올바른 정치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먼저 ‘정치적 제자도’를 갖추어야 한다.

이렇듯 유권자는 ‘정치적 제자도’에 있어서 핵심 주체이며, 이것이 ‘2007. 공의로운 선택’이 유권자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기독교 내에서도 기독교적 정책을 개발하여 정치권에 제안한다던가, 마땅한 후보가 없으므로 직접 후보자가 되거나 후보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모두 절실히 필요한 운동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유권자의 지지 기반 위에 있지 않고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 모든 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제자도’를 갖춘 유권자가 필요하다.

‘2007. 공의로운 선택’은 앞으로 기독교 유권자 실천단을 모집하여 유권자가 만드는 대선후보평가지표 개발, 기독교적 정책 자료집 제작, 유권자 캠페인, 교회의 공명선거실천 등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런 일련의 사업들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기독교적 가치에 합당한 정책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데 있다.

‘정치적 제자도’의 핵심은 공공영역에서 요청되는 정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때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들은 제공되어 왔다. 그러나 일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각각의 평가 기준이 왜 기독교적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제공되지는 못하였다. 이번 ‘ 2007. 공의로운 선택’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가르침과 기독교적 기준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일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정체성을 갖고 후보를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

둘째는, 유권자 스스로 참여하는 공론장을 형성하는데 있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매 선거 때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들은 대부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일반 유권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은 아니었다. 이번 ‘2007. 공의로운 선택’은 주권자인 유권자 스스로 우리 사회에 대해 숙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정치적 제자도’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 17:11) 정치적 제자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유권자 스스로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그것을 근거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다양한 공론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셋째는, 민주주의를 감당하기 위한 노력과 값을 치르는 연습을 시작하는데 있다.

민주주의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역시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을 통해서 쟁취된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가기 위해서도 그에 합당한 노력과 값을 치러야만 한다. 그것은 유권자 스스로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숙고와 성찰의 과정을 갖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유권자 스스로 주권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 가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2007. 공의로운 선택’이 이 모든 것을 단번에 이루어낼 수는 없다. 어쩌면 운동의 결과물은 애초의 목적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것을 하는 것은 누군가는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작고 초라한 시작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을 시작으로 교회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유권자가 스스로 토론하고 고민하는 유권자 운동이 점차 확산되어 가길 소망한다.

(복음과상황 2007. 11월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